장미 비파 레몬 - 6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소담출판사

언제부터인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우아하게 포장된 여성잡지처럼 변해버렸다. 나의 체감시기는 그녀의 결혼 후 첫 에세이집이 나온 후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도쿄타워 무렵부터인 것 같기도 하다.

예쁘게 포장된 불륜과 군데군데 나열되는 값비싼 브랜드들과 예쁘고 멋진 삶에 대한 액자같은 장면들. 완전히 젊지는 앉지만 체념하기엔 아직 젊은 여성들이 살아가며 겪게되는 자아성찰과 불만, 불안, 그런걸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짐작해보기도 하지만 요즘 계속 반복되던 그저 그런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중 한권일 뿐이였다.

그러니까 대충, 이런거..

저녁을 먹고 목욕까지 끝낸 미즈누마는 랄프 로렌의 잠옷을 입고 목욕 타월을 목에 걸친 채 소파에 앉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다. 미즈누마는 아이스티를 좋아한다. 도우코가 만들어주는 아이스티는 성에 차지 않아 늘 제 손으로 만들어 마신다. 물론 도우코 것도 만들어준다. 잘게 깬 얼음에 짙게 우려낸 얼 그레이와 우유를 2대 1의 비율로 섞은 미즈누마의 아이스티는 정말 맛있다.

"우리 미즈누마씨, 차를 잘 끓여."

언젠가 레이코와 통화를 하면서 그렇게 보고했을 정도다.
검둥이는 바닥에 납죽 앉아있는 도우코의 허벅지에 기대어 또 새근거리며 자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여전히 소리 없는 <캘리포니아>가 흐른다. 오늘 밤만 해도 벌써 두 번째 상영이다. 줄거리를 아는 영화가 소리 없이 흐르는 화면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된다. (p 70-71)

장미 비파 레몬엔 여섯 명의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 여섯 명은 그녀의 소설 어딘가에 나왔던 여성들을 쏙 빼닮았다. 그리고 도우코를 보면 어쩐지 에쿠니 가오리가 동경하거나, 혹은 동경했을 결혼생활을 엿보는 것 같아 불편해진다.

요즘의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은 지겹다. 반복되고 있고, 얄팍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가끔, 아주 가끔 그녀의 단편들 중에 내가 좋아하던 그녀의 분위기가 묻어있는 글이 있어서 난 오늘도 에쿠니 가오리의 새 책을 집어들게 되는게 우울하다. 부디, 이번에 집어온 빨간 장화는 내 우울을 날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아이스티는 만들어봐야지. 맛있는 아이스티를 만드는 건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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