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해서 의욕이 없는 하루였다. 분명 일어난 직후에는 팔팔한 기분이라 영어공부도 좀 하고 여기저기 기웃대며 의욕 넘치는 시간을 보냈었는데 동생이 계속 낮잠을 자고 있어서 그런가 어느새 내 의욕도 사라져가고...

그래서 오랜만에 꺼내 읽은 다자이 오사무의 '나의 소소한 일상'

산문집이고 길지 않은 글들이 긴 글보다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무데나 펼쳐서 해당되는 꼭지를 중심으로 읽고 있다. 산문집이나 단편집들은 그게 가능해서 좋다. 책만 좀 더 얇으면 좋은데. 어쨌든 오늘 펼친 부분은 마침 '희미한 목소리' (p 213)이 시작되는 부분이라 신나서 읽어나갔는데 음....한 사람을 보고 전체를 평가하면 안되지만 일본인들의 정서의 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서 머리가 더 무거워졌다.

믿는 능력이 없는 국민은 패배하리라 생각한다. 잠자코 믿고, 잠자코 생활해 나가는 것이 가장 옳다. 남의 일을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보다는 자신의 꼬락서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나는 이 기회에 좀 더 깊게 자신을 조사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절호의 기회다.

믿었다 패배하는 데 후회는 없다. 오히려 영원한 승리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비웃어도 치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아, 믿고 성공하고 싶다. 그 환희!

불평을 하지 말라. 잠자코 믿고, 따르라. 오아시스가 있다고 남이 말한다. 로망을 믿어라. 공영을 지지하라. 믿어야 할 길. 달리 없다.

다자이 오사무, 나의 소소한 일상 (p 213, 희미한 목소리 중)

다자이 오사무의 말 처럼 믿는다는 것은 용기가 있는 일이고, 옳은 일이지만 잠자코 믿고, 잠자코 생활하고, 불평하지 말라는 말이 껄끄럽고 거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잘못된 일을 말하고, 믿으라고 해도 믿는 것이 옳은 것인가? 지난 번 지진으로 발전소들이 무너지고 폐기물에서 나온 오염물질 때문에 난리가 됐을 때 피해가 가장 심했던 지역의 주민들과 공무원의 대화했던 내용을 기사로 본 적이 있다. 우리(주민들)에게도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대한 관리의 답변이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였나..기사가 나왔을 때 한창 저런 것도 세금으로 돈을 받아먹고 살아가는 공무원이냐고 니넨 왜 화내지 않냐고 난리쳤던 댓글들도 본 기억이 난다. 물론, 이상한 댓글도 있긴 했지만...그 말이 굉장히 기분 나빴고 그런걸 '나라'가 '국민들'에게 공공연히 말할 수 있는 풍토 자체가 기분 나빴다. 자기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나몰라라 하는 것 같아서. 자국 국민인데..

잠자코 믿고 따르라. 발전소가 다시 돌아가고, 있었던 일을 없었다 말하고, 너네는 건강하게 지낼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지금의 모든 상황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뭐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짧은 페이지인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서 오히려 더 기분이 가라앉아버렸다..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말이 유독 공감가는 문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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