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화가의 이름과 유명한 작품 한두개는 알고있지만, 중고등학교때 열심히 외우던 낭만파니, 사실주의니 하는 기본적인 이야기도 가물가물해져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무지한 사람에게 있어 그림이란 얼마나 로맨틱하고 근사해보이는 저 위의 풍경인지. 지금 다시 교과서를 펼쳐본다던가 미술사를 파고드는건 싫었다. 아, 정말 싫다. 무리야 무리,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벌써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미술사는 무슨, 어우.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택한 것이 이 것, 그나마 잘 아는 분야인 '영화'와 그림을 짜맞춰보는 거였다. 날림학생이고 중퇴자이긴하지만 일단 전공으로 배우면서 주워들은 풍월이 있으니 쉬울 것 같았기때문에 책을 봤을때 망설임없이..는 아니지만 조금 압박이 느껴지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냉큼 질렀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 그림을 좀 더 알기위해 고른 책이였는데 오히려 그림은 아는거고 영화는 모르는거라 그림을 통해 영화를 이해해야했다. 웁스(...)
책에 나오는 영화는 모두 찾아보겠다고 투지에 불타곤하는 사람에겐 권하고싶지 않다. 그냥 책에 나오는 설명 (이 책엔 그림과 엮인 장면 외에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가 언급되어있다.)과 스틸컷, 명화의 이미지를 보고 책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이라 자세한 설명과 함께 스틸컷이 쓰인거겠지만 실제로 책에 나온 영화 중 보고싶었던 작품 정도를 구하기 위해 검색했을때의 참담함이란 정말이지..
대중적인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제외하면 (혹시나하는 마음에 한번 더 말하지만 그런데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책은 굉장히 재미있었다. 초상화와 네크로필리아 - 그리고 그 유명한 피그말리온 이야기 - 를 한데 묶은 이야기부터 화가이자 영화감독이던 달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세브린느와 초현실주의' 파트까지.
짤막짤막한 각 파트안에서 뻗어나가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고 또 읽는 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끼워맞출 생각을 했을까, 싶은 부분도 몇군데 있는데 (대부분 이렇게 느꼈을때는 내 주관적인 판단 안에서 그 그림과 관련된 영화가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을때였다. 가끔은 기발한 짝짓기라며 감탄한 부분도 있긴했지만.) 그런 부분조차 좋게 느껴졌던 것은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않는 부분으로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 그것이 조금 독단적일지라도 - 작품을 재해석해내가는 열정에 감탄이 나왔기 때문이랄까.
작품에 대한 분석을 구경하는 것도, 그리고 지은이의 열정을 엿보는 것도 즐거움이 되었던 책. 한동안은 책상 옆에 놔두고 마음 내킬때마다 뒤적여보게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