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스틴의 숙제를 해야 하지만 -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런 일은 아주 성실하게 하는 편이다. - 내 마음이 계속 리애넌에게 머물러 있다. 집에 있는 그녀를 상상한다. 오늘 하루의 은총 같았던 시간에서 벗어난 그녀를 상상한다. 상황이 달라졌다고 믿는, 저스틴이 어딘가 바뀌었다고 믿는 그녀를 상상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주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그 문제를 생각하며 고민한다. 무를 수가 없다.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p39-40)
사실 제목에 소년이라고 적으면서도 내가 글을 읽으면서 정말 소년으로 느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열 여섯 소년 소녀의 이야기지만 지구 반대쪽의 열 여섯은 우리의 열 여섯과는 다르기 때문인지 학교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풋풋하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야기를 읽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긴 하지만 내가 써둔 제목에 내가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태어났을 때 부터 매일 매일이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였던 A. 자신의 이름도 가질 수 없어서 스스로 붙인 A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주인공인 에브리데이는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연애소설로 소개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지만 단순한 연애소설이라고 하기엔 씁쓸한 뭔가가 있는 알싸한 성장소설에 더 나아가서는 그냥 인간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고 싶어?" 내가 다시 묻는다.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을 말해봐."
나는 처음에는 그녀 대답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있을 지 깨닫지 못했다. (중략)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바닷가에 가고 싶어. 날 바닷가로 데려가주면 좋겠어."
나는 접속이 이루어진 것을 느낀다. (p 20-21)
사랑에 빠지는건 순식간이고 왜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사랑은 비논리적이고 주변에 적당한 민폐를 끼쳤을 때 더 극적인 반응을 얻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사랑을 위헤 포기해야하는 것이 많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런 극적인 장면들이 나오면 주인공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몰입이 되어 못마땅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에브리데이 역시 도입부에서 꽁기할 만한 일이 좀 생겼기 때문에 중간중간 쉬어가며 읽어야했다.
열여섯 소년이,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실제 운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사랑에 빠졌다면, 처음으로 손에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제어가 될 수 있을까?
라는 마음과
그렇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를 인식시키고 싶다고 남의 인생을 그렇게 뒤흔들면 안되지!
라는 마음의 전쟁의 연속이였다고나 할까.
특히 네이선 때. 안그래도 심기가 불편했는데 A의 독백을 보면서는 더 울컥했더랬다.
가엾은 네이선 달드리. 그는 자기 집에서 한 시간 거리만큼 떨어진 고속도로 갓길에서 눈을 뜰 것이다. 그가 얼마나 질겁할지, 나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에게 이런 짓을 한 나는 괴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유가 있다. (p 102)
무슨 이유!!!! 너에게는 하루 스쳐지나가는 일탈일 뿐이라도 쟤한테는 그게 아닐 수 있는데!!!
부모님에게 반항한번 안해본 범생이같은데 니가 그러면 안되지!!!!! 라는 생각때문에 중간에 때려칠까하는 유혹도 강하게 느꼈는데 네이선 덕분에 좀 더 편하게 읽게 되기도 했다. 공부만 하던 애들이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면 무서운 법이다.
A에 대한 비호감을 늘어놨지만 A가 비호감인채 책장을 덮은건 아니다.
네이선의 반격 아닌 반격에 당황하고 A의 리애넌에 대한 마음이 깊어가면서, 그리고 리애넌이 A를 인식하게 되면서 A가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 시작하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매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건 멘탈을 유지하는데 정말 힘든 일일테니까.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하는 것도, 자기 나름대로의 중심을 지키려고 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더 안쓰러웠다.
어떻게 보면 어렸기 때문에 유지되었던 부분일 수도 있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A는 이제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사랑의 감정과 가까운 (비록 몸을 빌렸던 아이의 일이지만) 가족의 죽음을 느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일을 겪어야할 거였다. 아르바이트라던가, 직장이라던가. 그런거. 하루만으로는 짊어지기 어려운 책임도 많이 져야겠지.
그래서 A가 내린 결정이 더 가슴 아팠던 것 같다. 숱한 연애소설이나 연애를 주제로 한 매체들을 볼때마다 주인공들의 사랑이 주변에 민폐라고 짜증내면서도 내심 그런걸 바랬던 건지도 모르고.
A는 사랑을 통해 더욱 성숙해졌다. 그리고 네이선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 강하게 추스렸고, 더 강해진 것 같기도 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연애소설인데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였다.
"나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나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녀가 말한다. "너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식으로 나를 볼 리는 없잖아."
(p 227)
나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겨내기를 원했다. 그러나 사랑은 아무것도 이겨낼 수 없다. 사랑 자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사랑은 사랑을 대신하여 싸우는 우리한테 달려 있는 것이다. (p 361)
짠하고 안쓰러웠던 A의 독백으로 오랜만의 감상문을 마무리하며 중간중간 책을 덮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문장도 몇개 덧붙여본다.
내가 진짜 로저라면 엄마에게 모든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진짜 로저라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해도 엄마는 내 편이 되어 줄 것이다. 치열하게. 무조건적으로.
그렇지만 나는 엄마의 진짜 아들이 아니다. 그 누구의 아들도 아니다. 나는 오늘 로저를 괴롭힌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밝힐 수 없다. 그 문제는 내일의 로저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로 로저 엄마의 걱정을 덜어준 다음 엄마를 도와 식기세척기에서 식기를 꺼낸다. 우리는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동지애 같은 걸 느끼며 조용히 일한다. 이제 잘 시간이다. (p 110)
나는 완전 범죄를 저지르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몸은 반드시 붙잡히겠지만 살인자는 유유히 달아날 것이다. 내가 왜 여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악마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순간 나는 생각한다. 아니야.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그 점이 정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분명 우리 모두에겐 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죄를 저지르지 않는 쪽을 선택할 뿐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죄를 저지르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나는 악마가 아니다. (p 222)
나는 잠시 더 운다. 마크는 이 장례식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흘린 눈물로 기억할 것이고,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안다. (p 344)
A가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스핀오프 소설이라는 <어나더데이>에서 A가 행복해지는 걸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