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사랑하던 남자가 내게 너무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난 싫증을 느꼈다. 답장이 없는 그에게 편지를 쓰는 데도 지쳤고, 내 침대 위에 걸린 그의 사진을 어루만지는 일에도 신물이 났다. (p 7)
사람들은 어쩌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문제였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내 나이 겨우 스물다섯인데, 그가 쓴 책이 서른한 권 밖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이미 여섯 권을 읽었으니, 1년에 한 권꼴로 읽는다 해도 쉰 살이면 끝이 난다. 그럼 그 후엔 어떡하나?
그렇다고 달리 사랑할 남자도 없어서, 결국 나는 다른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기로 결심했다. (p 10)
나는 책들을 애무라도 하듯 50권쯤 쓰다듬고나서야, 뒤라스의 '북중국의 연인'과 르루의 '노란방의 비밀' (내 방의 빛깔이 연노랑이라는 이유로)을 골랐고, 세 번째로는 폴리냑의 소설 하나를 집어들었다.
골라낸 세 권의 책을 신고하고, 나는 가뿐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거울 앞에서 푸아 소리를 내며 15분 남짓을 보냈다. 그건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내 버릇이다. 푸아, 푸아, 푸아. (p 28)
---------------- 주인공인 콩스탕스는 스물다섯입니다. 귀여운 아가씨예요~ 저 부분만 봐도 귀엽지 않나요? 특히 '푸아, 푸아, 푸아'하며 15분을 보냈다는 부분이요. 저번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 요런 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타이밍이라고. 시노부는 굉장히 억울해했지만요~ 그리고 그 책은 절 한동안 울적하게 했지만 이 책을 지금 읽게 된 것은 참 잘된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 것은 '집지기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 이후로 두번째네요. 왠지 좋은 일이 가득할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D
미슈는 즐겁게 사는 독신자였고, 쾌활한 낙천가였으며, 친구들의 이혼기념일을 챙겨서 축하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버지와는 죽마고우 사이이며 두 사람은 한 번도 소식이 끊어진 경우가 없었다. 미슈에겐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었다. <처성자옥에 갇히지 않고 완벽한 자유를 누리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p 28)
[ 가장 작은 것부터 풀어봐라. ]
나는 크고 작은 일곱 개의 꾸러미들을 작은 것에서 큰것 순으로 풀면서, 내용물을 차례차례 확인했다. 리프 레스토랑의 8백프랑짜리 상품권, 나무로 된 만년필, 목용용 소금 주머니, 참기름 한 병, 플러시 천으로 만들고 선글라스를 씌운 장난감 지네, 흰색과 노란색이 섞인 두툼하고 헐렁한 스웨터, 수소를 넣어 부풀린 커다란 풍선. 풍선을 꺼내자마자, 미슈 아저씨는 그것이 천장으로 날아가지 않도록 침대 머리맡 탁자에 붙들어 맸다.
나는 감사의 입맞춤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입맞춤을 했다. 우리는 거실로 돌아와 오후 네 시까지 카드 놀이를 했다.
미슈 아저씨가 현관으로 배웅을 나왔을 때, 나는 그가 연필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 그럼, 있고말고. 몇 자루나 되는걸. ] (p 46)
--------------- 쾌활한 미슈 아저씨는 매력적이지요~ 그래서 이 부분까지 읽으며 설마 프랑스판 키다리 아저씨는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자꾸 괴테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세상에 믿을 놈 없다잖습니까;;
--------------- 여기까지 읽어내려오는 동안 모르는 말이 많이 나왔었어요. 그런데 이게 오타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더라구요. 사전이 안보여서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봐야지, 했는데 이놈의 귀차니즘; 그냥 궁금해하고만 있습니다. 오늘은 꼭 검색해봐야할텐데..
p 13에 나온 "가리사니" p 46의 '싸고, 마디고, 게다가 지울 수도 있으니까'라는 문장에 나왔던 "마디고". p 47의 "시뻐하는 낯빛"까지...시뻐하는은 기뻐하는의 오타인가 라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만 혹시라도 다른 뜻이 있는건가 싶어서..이세욱씨가 번역한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 많이 헤메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에 믿을 사람은 없는걸까요..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콩스탕스의 이야기 하나 더.
문득 영화 "로슈포르의 아가씨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랑시앵이 델핀에게 한 짤막한 대사가 생각났다. <그는 파리에 있어요. 그리고 그 시인 말마따나 당신들처럼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파리는 아주 작지요.> (p 67)
그냥 이 부분이 마음에 들더라구요:D
무려 사일하고도 반나절을 휴일로 맞이한 동생님덕에
조금이나마 책읽는 속도도 내고, 십자수도 했으니 고마워해야하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