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 - 07.01.23

from Review/Book 2008. 8. 14. 19:45

잠시 나무들에 에워싸인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어머니 손을 잡고 떡갈나무 숲을 빠져나왔을 때의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풍경이 갑자기 확 트였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굽이쳐 내려가는 장대한 언덕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위였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까지 보아온 세계는 늘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렇게 광활한 풍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눈 아래 저 멀리에 하얀 마을이 널리 퍼져 있다.
믿기 힘들만큼 집이 많은 마을이었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깊은 쪽빛이 편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매혹적인 색채란 말인가.

"저것이 바다라는 거야. 전부 소금이 섞인 물이란다."

어머니가 설명해주었다.

"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어머니의 말을 따라했다.
그것이 저 깊은 쪽빛의 이름인가.

오후의 수평선 위에는 거대한 소나기구름 두 덩이가 키를 다투는 탑처럼 발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풍경과, 하얀 마을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잘 살펴봐라. 저곳은 집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야.
사람이 많이 살고 있지. 저곳이 도시야."

도시.

어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백 채, 천 채의 집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너무나 두려웠다.


"저기 바다도 보이고 도시도 보이지만 너는 결코 갈 수 없단다.
다만 바라볼 수 있을 뿐."


나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저것은 틀림없이 병풍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저렇게 치밀하고 거대하고 선명하고 압도적인 그림을 누가 그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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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은 불행해보이지 않았지만
저 부분은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읽었다.
갈 수 없는 곳. 압도적인 곳. 처음 보는 광경. 볼 수는 있으나 갈 수는 없는 곳.
궁금해하기보다 무서워하는 아이.
그냥 받아들인다.
그림과 같은 것이겠거니, 하면서.
본능적으로 이해했다,라기보다는 체념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하게 슬퍼졌다.

바다, 그것이 저 깊은 쪽빛의 이름.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엄두도 내지 못할 광경.
길에 속한 자.

 렌.


## 08.08.14


이글루에서 체셔님의 글에 나온 야시를 보고
좋아하던 부분이 생각나 부랴부랴 백업.
몇번을 다시 읽어도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렌이네요.
가혹하죠, 아이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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