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나무들에 에워싸인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어머니 손을 잡고 떡갈나무 숲을 빠져나왔을 때의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풍경이 갑자기 확 트였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굽이쳐 내려가는 장대한 언덕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위였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까지 보아온 세계는 늘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렇게 광활한 풍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눈 아래 저 멀리에 하얀 마을이 널리 퍼져 있다.
믿기 힘들만큼 집이 많은 마을이었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깊은 쪽빛이 편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매혹적인 색채란 말인가.
"저것이 바다라는 거야. 전부 소금이 섞인 물이란다."
어머니가 설명해주었다.
"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어머니의 말을 따라했다.
그것이 저 깊은 쪽빛의 이름인가.
오후의 수평선 위에는 거대한 소나기구름 두 덩이가 키를 다투는 탑처럼 발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풍경과, 하얀 마을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잘 살펴봐라. 저곳은 집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야.
사람이 많이 살고 있지. 저곳이 도시야."
도시.
어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백 채, 천 채의 집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너무나 두려웠다.
"저기 바다도 보이고 도시도 보이지만 너는 결코 갈 수 없단다.
다만 바라볼 수 있을 뿐."
나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저것은 틀림없이 병풍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저렇게 치밀하고 거대하고 선명하고 압도적인 그림을 누가 그렸단 말인가.
#
렌은 불행해보이지 않았지만
저 부분은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읽었다.
갈 수 없는 곳. 압도적인 곳. 처음 보는 광경. 볼 수는 있으나 갈 수는 없는 곳.
궁금해하기보다 무서워하는 아이.
그냥 받아들인다.
그림과 같은 것이겠거니, 하면서.
본능적으로 이해했다,라기보다는 체념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하게 슬퍼졌다.
바다, 그것이 저 깊은 쪽빛의 이름.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엄두도 내지 못할 광경.
길에 속한 자.
렌.
## 08.08.14
이글루에서 체셔님의 글에 나온 야시를 보고
좋아하던 부분이 생각나 부랴부랴 백업.
몇번을 다시 읽어도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렌이네요.
가혹하죠, 아이에겐..
어머니 손을 잡고 떡갈나무 숲을 빠져나왔을 때의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풍경이 갑자기 확 트였다.
우리가 서 있던 곳은, 굽이쳐 내려가는 장대한 언덕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 위였다.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까지 보아온 세계는 늘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렇게 광활한 풍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눈 아래 저 멀리에 하얀 마을이 널리 퍼져 있다.
믿기 힘들만큼 집이 많은 마을이었다.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깊은 쪽빛이 편평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매혹적인 색채란 말인가.
"저것이 바다라는 거야. 전부 소금이 섞인 물이란다."
어머니가 설명해주었다.
"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어머니의 말을 따라했다.
그것이 저 깊은 쪽빛의 이름인가.
오후의 수평선 위에는 거대한 소나기구름 두 덩이가 키를 다투는 탑처럼 발달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풍경과, 하얀 마을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잘 살펴봐라. 저곳은 집들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이야.
사람이 많이 살고 있지. 저곳이 도시야."
도시.
어머니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백 채, 천 채의 집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너무나 두려웠다.
"저기 바다도 보이고 도시도 보이지만 너는 결코 갈 수 없단다.
다만 바라볼 수 있을 뿐."
나는 어머니의 말을 이해했다.
저것은 틀림없이 병풍에 그려진 그림과 같은 것이리라.
하지만 저렇게 치밀하고 거대하고 선명하고 압도적인 그림을 누가 그렸단 말인가.
#
렌은 불행해보이지 않았지만
저 부분은 가슴이 아파서 한참을 읽었다.
갈 수 없는 곳. 압도적인 곳. 처음 보는 광경. 볼 수는 있으나 갈 수는 없는 곳.
궁금해하기보다 무서워하는 아이.
그냥 받아들인다.
그림과 같은 것이겠거니, 하면서.
본능적으로 이해했다,라기보다는 체념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하게 슬퍼졌다.
바다, 그것이 저 깊은 쪽빛의 이름.
시도조차 해볼 수 없는, 엄두도 내지 못할 광경.
길에 속한 자.
렌.
## 08.08.14
이글루에서 체셔님의 글에 나온 야시를 보고
좋아하던 부분이 생각나 부랴부랴 백업.
몇번을 다시 읽어도 가슴에 남아있는 것은 렌이네요.
가혹하죠, 아이에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