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킨트 中

from Review/Book 2006. 6. 13. 00:00

 

 
그러니까 하마,
누군가 아무런 인사를 남기지 않은 채 떠났다고 해도,
너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냐.
그것이 십일월 저녁 일곱 시였고 그리고 부다페스트 거리에서였다면 말이지.
양 동물원에서 부친 엽서는 어쩌면 십구년쯤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바랑스 전당포나 너의 집 우편함에 배달될지도 몰라.
이곳의 우편제도는 워낙에 예측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착할지 누가 알겠어?
 
엽서를 받으면, 그리고 양 알레르기 때문에 눈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두 팔을 멀리 위쪽으로 하고 바닥에 길게 누워봐.
그러면 너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존재의 배경이 만들어내는 소실점을 향하게 될걸.
나는 그것을 '동물원 놀이'라고 부르지. 너도 그것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
 
양 동물원의 끝없는 길 위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너와 두 명의 사촌이 두 팔을 위로 길게 하고 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보여.
선명한 빛의 무거운 구름들이
바람보다 빠르게 공간의 한 지점을 향해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야.
정확히 말하자면 떠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부터 단지 보이지 않게 되는 것 뿐이거든.
그러므로 하마, 여행은 내 길이 아니야.
그냥 아무런 인사도 없이 스윽하고 사라지는 것이라면 몰라도.
오늘도 역시 그런 식으로, 눈동자를 죄어오는 이 암울함을 위로하는거야.
 
 
 

배수아, 동물원 킨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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